로맨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1 : Sex and the City 1 > - 다시 꿈꾸고 사랑할 수 있도록, 나를 일으켜 주는 것들에 대하여
나에겐 조금 독특하다면 독특한 콘텐츠 시청 취향이 있다. 바로 한번 재밌게 본 콘텐츠는 내 머릿속에서 ‘재밌게 봤음’ 폴더에 넣어두고 잊혀져 갈 때쯤 다시 꺼내 보거나 혹은 어떤 장르, 어떤 느낌의 콘텐츠가 보고 싶은데 새로운걸 보고 싶진 않을 때 (새로운 내용을 소화할 기운이 없을 때)에 이 ‘재밌게 봤음’ 폴더를 스크랩북마냥 꺼내와서 그 안에서 고르는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접할 때의 긴장감, 설렘, 즐거움, 새로운 자극과는 또 다른 이미 다 알고 있는 맛이 주는 눅진한 만족감과 안온함은 집밥을 먹을 때 느끼는 기분과 상당히 닮아있다. 때론 그 안온함이 평소보다도 더 절실히 필요하다 싶은 때도 있다. 바쁜 시기를 막 끝내고 연차를 붙여 냈던 지난 주말이 딱 그랬다. 나는 어김없이 ‘재밌게 봤음’ 폴더를 머릿속에 띄우고 브라우징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십몇년간, 나뿐만 아니라 전세계 여자들의 머릿속에 ‘재밌게 봤음’ 폴더에 들어가 있던 영화를 선택했다.
1. 정보
제목 : <섹스 앤 더 시티 1 : Sex and the City 1 >
장르 : 멜로/로맨스, 코미디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 143분
OTT 채널 : 웨이브, 쿠팡 플레이
2. 줄거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무비 버전으로 드라마 마지막화에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뉴욕에 사는 네 명의 친구, 작가 캐리와 바텐더 남자친구의 아이를 갖고 결혼해 워킹맘이 된 변호사 미란다, 미술관 큐레이터였지만 현재는 그만두고 가정 주부로 살고 있는 샬롯, 할리우드 배우인 남자친구와 함께 LA로 이사 간 홍보 대행사 사장 사만다는 아주 막역한 친구 사이다.
작가 캐리는 드라마 내내 미스터 빅과 사귀었다, 헤어졌다, 싸웠다,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났다 등을 반복해 왔는데 늘 캐리에 대한 마음을 갈팡질팡했던 빅이 드라마 마지막화에서 드디어 제 진정한 사랑을 고백하며 둘은 해피엔딩을 맞았었다. 이 영화는 그 이후 장기연애를 이어온 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둘은 함께 살 집을 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집 명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별다른 요란한 프로포즈 없이 자연스럽게 결혼을 준비하게 된다.
둘은 작은 규모의 조용한 결혼식을 하기로 계획했지만 유명 작가인 캐리의 결혼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미처 막을새도 없이 그들의 결혼은 보그 웨딩 화보와 일간지 웨딩 기사, 300명의 하객까지 포함된 대규모의 요란한 결혼식이 된다. 앞서 이미 두번이나 결혼하고 이혼했던 빅은 이에 큰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캐리와의 결혼이 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극에 달해 결국 결혼식 당일날 캐리에게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결혼 당일날 식장에서 파혼 당한 캐리는 완전히 무너진다. 그런 그녀를 돌보기 위해 친구 4명은 신혼 여행으로 예약되어 있던 멕시코로 함께 떠난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만 자는 캐리를 친구들은 한명씩 돌아가며 찾아와 상태를 체크하고, 밥을 먹인다. 조금 기운을 차리고 나온 캐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서로의 깊은 속얘기를 나눈다.
멕시코에서 돌아온 캐리와 친구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캐리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동안 회피해왔던 모든 일들을 마주하며 하나씩 처리해나간다. 다시 정리해야하는 이삿짐, 쓸모 없어진 웨딩 드레스, 돌아온 연말과 발렌타인데이… 그리고 이 모든건 캐리의 친구들과 새로 고용한 비서 루이의 도움을 받아 함께 해낸다.
그 와중에 원래 불임이었던 샬롯이 임신하게 되고 샬롯은 만삭이 되어 레스토랑에 갔다가 우연히 빅을 만난다. 캐리에게 결혼 당일날 파혼 통보한 빅을 보고 잔뜩 화가 난 샬롯은 분노를 쏟아내고, 때마침 양수가 터진다. 빅은 샬롯을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혹시 캐리가 올까봐 기다리지만 캐리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
3. 결말 / 해석
뒤늦게 빅이 샬롯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자신을 기다리다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캐리는 크게 갈등한다. 그러다 그동안 스팸 메일로 자동 분류되어 몰랐던, 빅이 보내온 러브레터를 보게 된다. 빅은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의 러브레터를 일일히 타이핑해서 캐리에게 보내왔다. 캐리는 분노와 절망, 냉소가 가라앉은 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빅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지만 그 전에 받았던 상처가 너무 컸기에 망설인다. 그러던 어느 날, 놓고 온 신발을 픽업하기 위해 빅과 함께 살기로 했던 집에 들리게 된 캐리는 그 신발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빅과 마주친다. 그 순간, 그 어떤 논리도, 설명도 필요없이 사랑이 모든것을 상쇄했음을 느낀 캐리는 달려가 빅에게 안긴다. 빅과 캐리는 원래 계획대로 시청에서 혼인신고와 함께 약소한 결혼식을 올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평범한 식당에서 피로연을 즐긴다.
어렸을 때,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캐리가 굉장히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결혼식 당일날 파혼한 남자를 다시 용서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캐리가 자신의 사연을 지금 네x트판, 혹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고 조언을 구했다면 열 중 아홉은 그 남자와 다시는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을것이다. 어쩌면 정말 빅과 연을 끊고 마음을 닫는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한 최선의 행동이자 현명하고 쿨한 대처였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 영화를 다시 보고 난 후에 들었던 감정은 쿨하지 못했더 캐리에 대한 답답함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이었다.
인생은 종종 우리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우리의 꿈을 박살내고 우릴 진창에 쳐박는다.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 프로젝트 실패, 건강 위기, 인간 관계의 배신 등… 한번 인생에 크게 상처 받고 나면 다시 아름다움을 꿈꾸고, 사랑을 품는게 너무나도 바보 같이만 느껴진다.
결혼식 당일, 사랑하는 이에게서 파혼 통보를 들은 캐리도 그랬을것이다. 처참하게 넘어진채로 잠시 있는것 같던 그녀는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일으킨건 주변 친구들의 직접, 간접적인 도움이다. 멕시코 신혼여행에 함께 따라나서며 보여준 직접적인 연대뿐만 아니라, 그 친구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충실하게 겪어내는 모든 두려움과 고민, 용기와 사랑은 옆에서 지켜보며 캐리에게 다시 한번 아름다운 삶을 꿈꾸고 꾸려낼 용기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한 편의 영화로 지켜본 나에게도, 그 전에 어떤 진창과 고난과 배신이 있었더래도, 사랑하고 꿈꾸는걸 멈추지 않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것인지 다시 한번 마음 속 깊이 상기 시켜준다. 언젠가는 나의 삶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